부활절 유래,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살아나심으로 시작되다

부활절 유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시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묘실에 안치되셨다. 그로부터 삼 일 후, 묘실을 찾은 마리아가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했고 제자들도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예수님 생전에 “내가 삼 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절 유래 – 마리아가 찾은 무덤

부활절의 유래, 2000년 전 예수님의 묘실
부활절의 유래, 2000년 전 예수님의 묘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최초로 접한 이는 막달라 마리아다. 그녀는 요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새벽 일찍 예수님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묘실에 찾아갔다. 이날은 예수님께서 끔찍한 십자가형을 치르신 지 삼 일째 되던 날이었다.

당시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 사람은 산헤드린(공회) 의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이다. 부자인 그는 깨끗한 세마포 천에 예수님의 시체를 감싼 후, 자신을 위해서 만든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다. 당시 무덤은 동굴이나 인공으로 판 굴을 사용했는데, 시신을 두고 나온 뒤에 짐승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커다란 바위로 입구를 막았다.

놀랍게도 여인들이 예수님의 묘실을 찾았을 때에는 무덤 입구를 막고 있었던 커다란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전에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했다. 두려움과 기쁜 마음이 교차한 여인들은 그곳을 급히 떠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뛰어갔다.

막달라 마리아가 찾은 텅 빈 무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 부활절 유래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날을 기념한데서 비롯되었다.

부활절 유래 – 예수님 부활 후 초대교회 부흥의 원동력

부활절 유래,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부활절의 유래,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당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초유의 사태였다. 예수님의 부활에 따른 초대교회의 부흥이 이루어질까 염려되었던 것이다(마태복음 27:64 참조).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많아짐으로써 자신들의 입지가 전복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경배하였다(마태복음 29:16~17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한 가지 커다란 사실을 시사한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인정되는 증표가 되었던 것이다. 당시 예수님을 배척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의 부활사건’을 두고 큰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태복음 28:12~1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에게 돈을 쥐어주었다. 그동안 무덤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실을 은폐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제자들이 훔쳐간 것으로 유언비어를 퍼트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있었던 사실이 없는 것으로 될 리 만무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에 의해 더 많은 곳에 더 멀리 알려졌고, 후에 믿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부활 이후, 잔뜩 움츠러들었던 초대교회의 복음은 활성화되었고 제자들은 담대하게 예수님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마가복음 16:20, 사도행전 2:14~42, 사도행전 4:32~35 참조).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 하나님의 교회의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천 년이 지난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지키는 부활절의 절차와 방식이 다르다. 동일한 성경의 기록을 두고 서로 다르게 절기를 지키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부활절 – 가톨릭에서 지키는 부활절과 성삼일 전례에 대해’, ‘2017년 부활절 – 개신교는 어떻게 부활절을 지키는가’라는 글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